명연설

한심하게만 느껴지던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서울 시민

2024년 12월 20일

 

* 12.3계엄 이후 많은 청년들이 거리로 나와 탄핵 집회의 한 축을 이뤘다.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과 그 청년들이 광장에서 느끼는 연대감과 희망을 잘 보여주는 감동적인 연설

https://youtu.be/RIr9rbC4FGE

 

 

저는 오늘로 13번째 집회 참여하는 서울 시민입니다. 저는 양극성 장애, 흔히 말하는 조울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보통 사람들 정도의 기분으로 살아가지만, 또 어떤 때는 한없이 가라앉곤 합니다.

 

그 일이 있기 전 저는 2주 동안 집 안에만 머물고 있었습니다. 매일을 울고 어두운 생각만이 머리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계엄이 터졌습니다. 나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약이 없으면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가 없는데 죽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요. 계엄이 해제되고도 부정적인 생각들이 끊임없이 들어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원래의 저는 이런 일에 사람들과 함께 소리치며 우리의 외침이 더 나은 미래를 가져올 거란 희망을 가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지금 난 왜 방 안에 갇혀 있을까’ 하고요.

 

저는 생각이 참 많습니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온갖 생각을 하며 괜찮은 날에는 긍정적인, 우울한 날에는 부정적인 결과를 예상하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을 버렸습니다. 나는 무조건 국회로 간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말자. 

 

처음엔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불안 증세가 있던 저는 지하철역의 계단을 내려가는 일이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매일 밖으로 나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소리치다 보니 한심하게만 느껴지던 나를 잊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계엄 사태 전에도 이 사회는 충분히 병들어 있었습니다. 혐오로 얼룩진 미디어들이 쏟아지고 그에 대한 사유가 사라져 얼룩에 그대로 물들고 마는 세상이었습니다. 살아내기가 쉽지 않아 저처럼 아픔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검은 세상이 더 검게 물들 수 있는지 몰랐습니다. 이제는 절망적인 미래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응원봉들이 만들어낸 커다란 빛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저도 아주 작은 빛이나마 보탤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날이 많이 춥습니다. 같은 추위도 더욱 춥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추운 겨울을 같이 잘 견뎌내 봅시다. 

 

우리의 역사가 말해주죠. 결코 올 것 같지 않던 봄도 반드시 옵니다. 매일 뉴스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참담하기만 하고 그에 동조하는 이들의 반응이 의욕을 상실케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포기하지 말아요. 같이 싸워나갑시다. 우리는 결국엔 이길 겁니다. 다시 봄이 올 거예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