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31일
오늘은 올 한 해가 마무리되는 커다란 날이다. 오늘 하루로 365일이 담긴 일년이 마감되는 무거운 날이기도 하다. 새벽처럼 일어나 잠시 생각에 잠기다 그냥 두 시간이 지나갔다. 깜짝 놀라 시계를 보니 아직은 8시가 안되었다. 서둘러 밥을 먹고 나왔다. 어찌되었든 내탓에 늦었다. 시청역에서 내려 8번 출구로 나가 상황을 보니 아직 천막을 치고 있는 중이다.
오후 네시가 다 되었는데도 사람들의 참여가 저조하다. 오겠지. 연말이기에 더 와야 하는데 하면서도 다섯시가 다 되면 많이 올것이다 하는 믿음이 있었다. 네시 반이 넘어가자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는데 금세 자리가 계속 뒤로 밀려간다. 그렇지! 이거야 이래야지. 기분이 좋았다.
모두들 내년에는 윤석열을 몰아내자는 의지가 보인다. 그래 할 수 있다. 이런 시민들이 있는데 무엇을 못하겠는가!
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이다. 덕분에 오늘 하루도 즐거움으로 살아냈다. 내일이면 내년의 첫날이다. 더 열심히 살자.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여 후회가 남지 않도록 살자. 시간이 없다. 허투루 흘릴 시간이 내겐 없다.
2023년 3월 4일
오늘은 시 낭송이 있기도 하다. 내가 순서가 되어 시 낭송을 하고 내려오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뭔가 많이 부족한 느낌이 들어 창피하기도 하였다. 다른 분들이 잘했다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데 그 말들이 더 부끄럽게 만들었다. 이럴 거면 집에서라도 몇 번 읽어보고 나름 준비라도 할 걸 하는 후회가 들기까지 하였다. 어쩌랴 이미 지난 일이 된 것을. 기회가 되어 다시 하게 된다면 미리 연습해서 후회가 생기지 않게 하자.
오늘 겨우 1만 8천 걸음을 걸었다고 핸드폰에 저장된 만보기의 기록이 나왔다. 좀더 움직일걸 이렇게 게을러지고. 요령을 피우면 살기 싫다는 표신데, 이러면 안되는데. 하긴 이정도면 암에 걸려서도 오래 산 셈이다. 그래도 지금은 아니다. 이 미친놈을 처단시키고 갈때 가야지 지금은 아니다.
2023년 3월 26일
암에 걸렸을 때 태어난 손녀가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걸 못 볼 줄 알았는데 보게 되었다. 어디까지 살게 될까. 이제 나도 궁금하다. 어디 갈 데까지 가보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윤석열이 끌어 내리는 거 볼 수는 있겠지. 안 그러면 원통해서 못 죽는다. 잘못하면 귀신이 되어 떠돌아다닐 수도 있다. 별생각을 다 한다.
2023년 3월 30일
휴게공간에 앉아 앞을 바라보는데 하염없는 눈물이 나왔다. 췌장암 4기면 사실상 말기 암인데, 지금껏 선고받고 5년을 살았으면 오래 산 건데 무슨 욕심이 있어 눈물이 났을까. 그래도 더 살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름 오래 살아 언제 죽어도 이상한 것 없다고 큰소리치며 살아왔는데 속내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이런 상태로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없어 앉아 있는데 계속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자신감을 잃고 풀이 죽어있는 내게 다가와 위로하며 “다시 한번 더 치고 나가야 조일권이지 그렇게 나약하면 되겠냐”고 다그치신 분의 말을 듣다 ‘그래 다시 한번 해보자’ 하고 힘들어도 지금껏 그렇게 했는데 한번 더 하자는 욕구가 생겼다.
담당교수님은 지금껏 체력관리를 혼자서 나름 잘 해오셨지만 이번에는 많이 힘들거라 하셨다. 내가 느낀 상황도 그럴 것 같다. 그래도 죽는 것 보다 더 할까? 아니 어쩌면 고통 때문에 죽여달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경험상 1년을, 2년을 참고 견디면 몸에 적응이 되어 아무렇지 않게 될 것이다. 해보자. 이를 악물고 해보자. 각오를 다지게 만든 그분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지금은 윤석열 이놈도 타도를 못 했는데 내가 먼저 죽을 수는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놈을 처단하고 죽더라도 죽어야 한다. 이를 앙다문 하루가 지나간다.
2023년 4월 8일
집을 나와 지하철을 타러 가다 콧속이 답답해 슬쩍 코를 풀었더니 잠시 후 콧속이 끈적끈적한 느낌이 들어 슬쩍 만져보니 피가 보인다. 처음에는 작게 나와 휴지와 손수건으로 닦으며 대충 넘어갔다. 전철 안에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앉아 시청까지 오는 동안 별문제는 없었다.
시청역에 내려 행사장 쪽으로 가서 먼저 온 자원봉사단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나서 느낌이 안 좋아 뒤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가서 편의점에서 물티슈 한 통을 사서 나와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 마스크를 벗고 코를 막았던 휴지를 뺏더니 왈칵 피가 쏟아져 내린다. 느낌이 좋지 않았지만 어디 가서 씻을 곳이 없어 그곳에서 물티슈로 대충 씻고 나왔다. 그러나 잠시 후 다시 콧속이 좋지 않아 뒤로 가서 막았던 휴지를 뺐더니 다시 피가 왈칵 쏟아진다. 그리고 계속 쏟아져 나온다.
그러기를 수십 차례. 아마도 코를 통해 쏟아져 나온 피만 해도 5L는 족히 되었을 법하다. 결국 입고 있던 옷가지에 피가 너무 묻어 씻어도 감당이 되지 않아 벗어서 배낭에 넣고 겉옷은 물티슈로 비벼 어느 정도 흔적을 감추었다.
조용히 집으로 갈까 생각도 들었으나 문제는 전철 안에서다. 벌써 마스크도 10여 개를 버렸는데 만원의 전철 속에서 쏟아지는 피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일단 견뎌보자 하고 계속 씻으며 버티다 저녁 다섯 시가 다 되어가자 서대문쪽으로 가기로 한 사람들과 차를 타고 ‘촛불행동과 함께하는 모임’ 발족식 장소로 갔다. 다행히 그때부터 피가 소강상태로 들어섰다. 다행히 피가 멎어 행사는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2023년 4월 27일
다시 살아보자.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남을 배려하는 것도 잊지 말자. 항상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도록 신경을 쓰자. 결국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라도 살아내야 한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지금의 이 시련은 나를 이기적으로 만들려는 악마의 장난이니 이걸 이겨내고 계속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다. 그것이 없다면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 자 일어나자!
2023년 4월 29일
밤이 되니 다시 통증이 양어깨 위로 쏟아진다. 이럴 때는 진통제를 먹어도 효과가 없다. 그래도 먹어야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다. 먹고 그것을 핑계로 참아 보는 노력을 하지. 밖에는 비가 오나 보다. 빗소리가 들린다. 오늘 밤 진통으로 얼마나 괴롭히려나. 그나저나 내일 촛불집회에 어떻게 갈 수 있으려나. 모든 건 자고 일어나 봐야 알 수가 있다. 일단은 약해지지 말자. 약해지면 안 된다. 이까짓 암 따위에 내가 져서는 안 된다. 각오를 단단히 하자.
2023년 5월 4일
자전거를 세워놓고 배낭을 가지고 가니 바로 양어깨에 통증이 심하게 왔다. 이 고통을 숨길 수 있어야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갈 수 있다. 이 고통을 숨겨야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지 않게 된다. 자원봉사를 갔다가 나 때문에 신경을 쓴다면 괜히 여러 사람을 괴롭히는 일이 되기에 안 간만도 못한 셈이 된다.
2023년 6월 8일
촛불행동의 노래 (진군가)
- 물길
강인한 의지 굳건한 정신
불꽃 기둥의 담대한 심지가 되어
흔들리거라 흔들리거라
광장이 가득 채워지도록
우리의 열정을 따라
세차게 더욱 세차게
흔들리거라 흔들리거라
결코 꺼질 수 없는 투쟁의 불꽃
우리의 심장을 뜨겁게 하리라
백척 간두에서
온몸을 떨고 있는 민족의 운명
촛불이여
세차게 타오르거라
지금 촛불이 타오르는 광장
촛불시민의 해방구가 되는 날
더덩실 저절로 올라가는 어깨춤
민족을 함성으로 살리고 있다
*조일권 선생님은 2023년 6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이 시를 두고 만든 노래
* 촛불행동의 노래│경험과상상
https://www.youtube.com/watch?v=5fEtRl4ZE_Q
촛불행동의 노래 (진군가)
- 물길
1. 강인한 의지 굳건한 정신
불꽃 기둥의 담대한 심지가 되어
흔들리거라 흔들리거라
광장을 가득 가득 채워라
촛불이여 타올라라
촛불의 광장이 해방구가 되는 날
민족의 운명 더덩실 어깨춤 추리라
2. 결코 꺼질 수 없는 투쟁의 불꽃
우리의 심장을 뜨겁게 하여
흔들리거라 흔들리거라
우리의 열정 더욱 세차게
촛불이여 타올라라
촛불의 광장이 해방구가 되는 날
민족의 운명 더덩실 어깨춤 추리라
촛불시민 함성으로 승리하리라
조일권의 노래(부제 : 촛불행동의 노래) │우리나라 (Feat. 경험과상상, 빛나는청춘)
https://www.youtube.com/watch?v=O6-c06R2FVQ
강인한 의지 굳건한 정신
불꽃 심지가 되어
흔들리거라 흔들리거라
광장이 채워지도록
우리의 열정을 따라
세차게 더욱 세차게
꺼질 수 없는 투쟁의 불꽃
우리의 심장을 뜨겁게 하리라
촛불이여 세차게
타오르거라
승리의 날 더덩실
춤을 추리라